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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스님이 중건해 벽절이라 불린 가섭사의 ‘염계달’ 명창 콘텐츠, ‘음성군 활용해야’
 
남기원   기사입력  2019/05/14 [08:44]

 

전통문화예술양성위원회는 벽암스님이 중건해 벽절이라고 불리는 가섭사(음성 벽절)에서 득음한 판소리 중고제 시조인 염계달 명창의 콘텐츠를 음성군이 스토리 텔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염계달은 경기도 여주군 출생으로 공부하러 가는 도중 장끼전 1권을 습득해 10년 동안을 하루같이 공부하고 세상에 나오자 성명이 일세를 풍미하게 되었다고 조선창극사는 전하고 있다.

 

▲     © 편집부

 

 

염씨 집성촌 일원 음성 벽절이라 불린 가섭산 가섭사에서 귀거한 염계달은 지게를 지고 충주방향의 뒷산으로 가서 나무 한 짐을 해놓고 다시 소리공부를 계속하였으며, 석양 때 절로 내려와 장작을 쪼개며 삼경까지 소리를 하는 것이 염계달의 일과였다고 일화(逸話)로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또 밤에 소리를 연습할 때면 졸음을 쫓기 위해서 상투에 끈을 연결해 천장에 매달아서 잠을 깨우며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런 정진 끝에 춘향가와 흥보가의 연마는 물론 장끼전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득음(得音)을 이루었다.

 

 

공부를 마친 염계달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였으나 입고 나설 옷이 없어 고민하던 어느 날 법당에 거물급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옷이라도 한 벌 얻어 입을까하여 그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던중 염계달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흥보가중에서 가난타령을 불렀는데 그 처절하고 슬픈 소리가 절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져 불공을 마친 부인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그 부인은 충주부사의 수청 기생 안보영이었는데 염계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옷과 돈 20냥을 내 놓았으며 며칠 후 충주 감영에서 소리를 할 수 있도록 주선까지 해주었다.

 

 

훗날 염계달은 이때 주운 장끼전을 판소리로 창작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고, 특히 헌종(1834-1849)의 총애를 입어 동지벼슬을 제수 받고 어전 광대가 된다.

 

 

이후 염계달 명창은 충주에서 살았으며 슬하에 직계 후손은 없었다고 전해지며 일부의 문헌말고는 자료들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아쉬움을 음성군 가섭산 일원 염씨 집성촌 관계자는 전했다.

 

 

전통문화예술양성위원회 관계자는 충주시가 우륵이란 콘텐츠 활성화 방안으로 1988년 충주시립 가야금 연주단을 창단해 1993년 충주시립우를국악단으로 개칭과 탄금대를 명소화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시도처럼 음성군이 가섭산 일원을 염계달의 소리공원으로 지정 보호해 스토리텔링화 하는 노력과 음성군립염계달소리단 창단 및 판소리 산공부 수목원 등의 활성화로 문화관광 산업에 한발 다가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얼마전 경상북도는 경북관관공사를 경북문화관광공사로 개명해 구미시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전 한체대 김성조 총장을 사장으로 영입해 관광산업에 문화를 입혀 관광객을 유치하는 해법으로 다가서고 있다.”이렇듯 지자제들이 문화를 이용한 관광산업을 피턴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시점 염계달이라는 중요 콘텐츠가 충북 음성군의 문화관광산업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선촌서당의 김봉곤 훈장은 2017년부터 판소리 중고제 학술 세미나 및 대한민국 중고제 소리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중고제 시조인 염계달 명창과 중고제에 대해 재해석하고 기호지방의 소리를 찾아 나서고 있으며 국악진흥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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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4 [08:44]   ⓒ h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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